무질서와 질서
현대사회는 전통적 철학이 전복이라는 시대적 특징을 갖고 있다. 그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끝자락에서 사고의 전환으로써 나타난다. 이러한 철학적 전복이자 사고의 전환은 과거 신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자연으로 이어지는 이 흐름으로써 해체와 시간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과거에는 흔히 질서로부터 이해를 시작했다. 하지만 현대에서의 사고는 무질서로부터 시작된다. 즉, 하나의 질서로써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객체화시킴으로써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모든 것에 대한 사고가 거대한 질서의 흐름 속에서 존재하는 것에서 하나로써 존재하는 해체주의적 관점에서의 사고로 전환된 것이다. 가브리엘과 같은 철학자는 세계가 존재할 수 없음을 주장하면서 해체주의를 극복하고자 했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사유 속에서 해체주의의 흔적을 보이기도 했다. 가브리엘에 따르면 피자는 조각들로써 존재하는 것이지 피자 자체에 대한 존재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피자로 인식하는 것은 조각들로 이루어진 것일 뿐 전체의 피자를 존재로써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해체주의의 관점으로 인식하는 것 또한 하나의 객체화된 존재로써 인식하는 것인 현대사회의 대표적인 철학적 사조라고 볼 수 있겠다.
현대사회의 대표적 철학사조로써 해체와 함께 존재하는 것이 바로 시간이다. 시간을 인식하는 모습을 통해서 사고가 어떻게 전화되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과거의 철학적 사조는 사물과 대상을 중심으로 인식해왔다. 즉, 사물이 실체로써 존재하고 시간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이와는 다르게 모든 것들을 생성과 변화로써 바라보고 있다. 모든 것들이 시간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 안에서 생성과 변화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가변적 존재로써 모든 것을 바라보고, 변하는 과정 속에서 인식하는 것이 해체와 더불어 현대적 사고의 큰 특징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이데거와 같은 철학자를 통해서 시간에 의해 인식되는 것을 넘어서 사물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시간의 지배아래에 있다고 보고 있다. 시간을 보는 주체인 인간 마저도 시간 안에서 변화를 피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중심이자 철학을 사유케하는 존재로써의 인간이 시간에 따라 흘러가고 해체되는 존재로써 인식이 변화된 것이다.
오늘 날 해체주의의 영향으로 무, 공, 다자 등의 개념이 화두로 오르고, 비판의 대상은 국가와 자본주의에서 시간과 인간 중심적인 사고까지 확장되고 있다.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끝자락에서 인간중심적인 사고가 해체되는 과정까지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포스트휴머니즘이 도래될 것이 예견되면서 인간이 기계로 대체될 수 있는 사고의 확장이 예견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지면서 기독교 신학은 또 하나의 국면에 접어들었다. 모든 것이 해체되는 시대 속에서 기존의 틀 안에서 안정적으로 거하길 원하는 기독교 신앙을 추구하는 모습은 기독교 신학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이자 풀어야 할 지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 신학이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는 것이 가지는 의의는 시대적 흐름 안에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도태되지 않고, 자가당착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에 기반한다. 기독교신학이 내적인 비판을 통해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해체주의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기독교 신앙이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흐름 속에서 신앙적 대안을 제시함으로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시대를 열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종교철학이 가야할 방향성이자 기독교 신학의 미래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