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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역사주의 비평

cacto19th 2020. 6. 23. 15:32

 

1. 전통적인 역사관

    전통적인 역사관은 선형적이고, 인과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AB이다와 같은 형태를 보인다. 이때의 AA라는 사건을 의미하고, 실제로 존재하는 사건이 된다. 전통적인 역사관에서 사건들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으며 인과성을 가진다. 그렇기에 역사는 진보하게 된다.

 

2. 신역사주의

    신역사주의는 미셸 푸코의 철학 사조와 함께한다. 푸코의 철학 담론에 입각하여 역사를 바라보는 기존과 다른 방식이다.

    신역사주의에서는 역사는 진보다라는 명제를 부정한다. 역사는 단편적이고 객관적인 사건(사실)들의 총합이 아니다. 복잡한 관계 속에서 형성된 것이 역사이기에 시공간의 경쟁적 이데올로기들, 사회와 정치 그리고 문화적 의제들의 대립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은 사실의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관점에서의 해석이 동반되어야 한다.

 

   중세를 암흑의 시기, 근대를 계몽의 시기로 나누는 것은 전통적인 역사관에서의 해석이다. 하지만 근대를 계몽(빛을 비추는)의 시기로 봐야하기 때문에 중세를 암흑으로 규정 지었다는 해석을 할 수 있다. 사실 관계만 따지자면 근대의 마녀사냥이 중세의 마녀사냥보다 더 빈번하게, 많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미국의 세일럼 같은 경우를 봐도 그러하다. Counter reformation은 근대에서 더 많이 이루어졌다. 미셸 푸코는 성, 광인을 다루는 사회 방식의 변화를 추적하는 것으로 지식과 권력의 공모관계를 밝혀냈다. 객관적 사실로 우리가 상식으로 삼아온 전통적인 역사관이 실제로는 훨씬 더 복잡하고, 많은 담론들을 다뤄야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사실이란 그 사실을 맥락화하는 방법에 따라 구성되는 것이다. 맥락화 방법에는 사실에 중요도에 따라 어떤 것을 보여주고 또 버릴 것인지 판단하는 문제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역사는 진보하는 것이 아니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도 없다. 그저 해석만 존재할 뿐이다.

 

3. 맥락화에 대해 생각해야 할 것들

1) 객관적 분석의 불가능성

   역사가의 시각은 언제나 영향을 받는다. 그들이 속한 문화와 그 안에서의 경험들로 형성되는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인 사정들에 영향을 받는 것이다.

 

2) 역사의 복잡성

   역사는 직선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가 직선적이라는 것은 19c 말의 진보사관에 속한다. 오히려 역사는 목표나 목적지 없이 그때그때 생겨나는 새로운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진보는 민주당 혹은 민주주의자를 가리킨다. 진보는 역사를 발전하는 주체로 보고 있다. 따라서 올바른 신념을 가진 혁명가에 의해서 역사가 바뀔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신역사주의에서는 발전하지 않는 역사에 집중하고 있다. 우연한 것들의 중첩과 반복으로 흘러온 것이 역사인 것이다. 한 명의 신념에서 역사가 바뀌지 않는 것이다. 개인이나 집단은 목표를 가질지는 몰라도 인간의 역사 자체는 목표성을 갖지 않는다.

   코로나로 인해서 비대면 수업의 거부감이 사라진 것은 코로나가 진보된 수업방식을 가져온 것이 아니다. 코로나 이전에도 발전된 기술은 있었고, 비대면 수업에 대한 거부감이 코로나로 인해서 강제적으로 익숙해진 것이다. , 코로나로 인해서 우연히 디지털 네트워크 사회로 직면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신역사주의에서의 역사해석 방식에 적합하다.

 

3) 인과관계의 복잡성

   신역사주의가 바라보는 인과관계란 원인에서 결과로 향하는 일방통행로가 아니다. 모든 사건은 복잡하고 미세한 작용들로 의해서 형성되고, 그와 동시에 그 문화를 형성한다.

 

4) 역사적 주체성, 자아의 상호작용

  주체 혹은 자아는 우리가 태어난 문화에 의해 형성되고 동시에 문화를 형성한다. 주체와 자아는 우리가 태어난 문화에 의해 형성되고, 그와 동시에 그 문화를 형성한다. 개인의 정체성과 문화적 환경은 완전한 분리의 상태가 아니고, 끊임없이 서로를 반영하고 규정한다. 상호 형성 관계(서로를 창안해 내는 관계)이자 불안정하고 역동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우리가 가진 주체성은 사회가 매순간 제시하는 제약과 자유 사이에서 우리만의 길을 협상해 나가는 일생의 과정인 셈이다. 전통적 역사관에서는 기존의 것을 뒤집어 엎는 것을 혁명으로 보고 역사는 발전된다고 보지만 신역사주의에서는 보다 복합적인 해석을 요구한다.

 

5) 미셸 푸코, ‘권력은 도처에 있다

   권력이란 모든 방향에서 항상 위아래(사회적 구조)로 순환하고, 끊임없는 교화의 확산 속에서 진행된다.

   권력은 독재자만의 특권이 아니다. 진보를 말하는 이들 속에서 개혁의 대상들이 함유되어 있는 듯이, 보수를 말하는 이들이 올바른 도덕관을 가진 자들이 아니 듯이 권력 역시 복합적인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고, 특정인만의 소유물도 아니다. ‘B의 원인이 A’가 아니고, A는 복합한 과정인 것이다. 페미니즘 운동이 대학교수들에게서 시작이 되었지만 그들은 사회적 약자로의 여성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사회적 약자로 여성을 대변하는 데 그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다.

 

6) 담론의 중층성과 복잡성

   담론은 특정 시공간에서 특정한 문화적 조건에 따라 형성되는 사회적 언어이다. 따라서 진술될 수 없는 것이고, 인간 경험에 대한 특정한 이해방식인 언어로 존재한다. 언어는 추상화를 개념화시키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한계는 늘 존재하는 데 차이를 인식하고, 다양한 담론들의 복합성으로 극복해 나간다. 따라서 하나의 담론은 존재할 수 없다. 담론은 사회적 권력이 갖는 복잡한 문화적 역동성을 단독적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담론들은 불안정적이고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하면서 때로는 다양한 방식들로 서로 겹쳐지고 경쟁하는 유동적인 상태에 있는 것이다.

 

4. 담론과 권력

   신역사주의적 관점에서 인간이 항상 억압적인 사회의 희생물로 비춰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 개인의 삶과 공적인 삶 속에서 권력에 대항하는 여러 방법들을 찾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층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서 단일화된 기대정신으로 내부단합을 시도한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반동성애를 주장하면서 하나의 기대담론인 도덕적 완결성 혹은 부도덕한 삶의 정죄를 내세우며 내부단결을 촉진시킨다. 하지만 그러면서 교회 내부의 죄들은 관심 밖으로 넘어간다. 하나의 체제의 정당성을 위해서 단일담론을 사용하는 것이다. 부도덕성을 규정함으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모든 지식과 담론은 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하지만 단일 담론은 이러한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북한과 같은 사회 속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지만 그 사람들은 그 속에서도 살아가고 빠져나갈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할 수 있다. 하지만 단일 담론은 그 가능성을 배제시킨다. ‘가난한 사람들은 불행하다는 문장 속에서 자본주의의 담론을 확인할 수 있지만 그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다양한 삶의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신역사주의의 핵심은 무엇이 정당하고, 자연스러우며 정상적인지를 결정하는 담론과 권력작용들의 흐름들을 서술해내는 과정에 있다. 푸코는 성과 광인 속에 존재하는 담론들을 추적해가면서 그 속에서 지배권력이 자신의 통제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라는 흔적들을 밝혀냈다.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특정한 해석 역시 특정한 개인과 집단의 권력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신역사주의는 역사 서술을 일종의 서사 또는 이야기로서 인식한다. 역사를 텍스트로 간주하고, 문학 비평가들이 문학 텍스트를 해석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역사를 해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신역사주의에서 문학텍스트란 문화적 가공물이고, 텍스트가 생산된 시공간 속에서 작동하는 담론들의 상호작용은 사회적 의미들의 그물망을 형성한다. 문학 텍스트를 통해서 그 그물망에 얽힌 담론들의 작용방식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5. 소수자들의 역사적 서사의 역할

   소수자들의 서사를 통해서 모든 집단의 역사적 서사를 동등하게 재현하여 다수의 목소리를 담아내면서 지배 서사에 도전할 수 있다. 흑인들의 서사를 통해서 미국 역사를 뒤집어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버틀러의 시도와 같이 억압받는 여성을 통해서 페미니즘 운동을 다시 해석할 수 있다. 페미니즘 운동을 주도하는 주체들은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을 바라본다. 하지만 억압받는 여성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여성이 전부 사회적 약자는 아니다. 주류의 관점들로 서술된 역사를 반복하는 상황 속에서 소수자들의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이들의 상황을 개선시키는 데에 신역사주의는 대안적 세계를 제시할 수 있다.

 

  따라서 신역사주의적 쟁점들은 다음과 같이 열거할 수 있다.

1)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작동하는 가?

2) 문화의 자기 인식(이를테면 본인을 단호한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의 믿음)이 그 문화의 정치적 법적 사회적 정책과 관례들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치는 가?

3) 문화 안에서 권력은 어떻게 순환하는 가?

 

6. 신역사주의의 두터운 묘사 (중층기술)

   신역사주의의 관심은 복잡한 권력 구조에 있다. , 서로 다른 문화들이 각자의 권력구조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이데올로기에 맞는 역사 해석 방식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각 문화가 자신에게 전달하는 자신들에 관한 이야기들의 역사로 바라본다. 역사는 각 문화가 자기자신에게 말하는 거짓말들의 역사이자 이데올로기의 작동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객관적인 역사 해석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통적 의미의 역사 역시 존재하지 않고, 오직 역사에 대한 해석들만 존재한다. 각 담론들을 민감하게 감지하는 서술방식으로 두터운 묘사를 사용한다.

 

   두터운 묘사는 중층 기술이라 불리운다. 인류학에서 착안한 방식으로 이미 주어진 문화적 생산물(출산의례, 제례의식, 놀이, 형법, 예술 작품 등)을 꼼꼼하고 자세하게 검토하는 작업을 뜻한다. 특정한 문화적 생산물이 해당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에게 갖는 의미를 발견하고, 그러한 의미를 문화적 생산물에 부여하는 사회적 관습이나 문화의 규칙과 세계 이해 방식 등을 드러내려 하는 것이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문화는 고상한 것이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는 하위 문화 즉, 대중문화에 관심을 갖는다. 문화에 대한 관점이 특정인들의 향유품에서 일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것으로 바뀐 것이다. 대중문화에서 나타나는 저항성을 통해서 대중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의 작동을 해석하는 데에 집중한다.

 

   따라서 두터운 묘사는 사실들이 아니라 의미를 탐색하는 것이다. 전통적 역사서술이 초점을 두는 군사작전이나 법안 통과와 같은 주제가 아니라 가족 내의 역학관계, 여가활동의 역사, 성행위의 역사, 양육권의 역사 등과 같은 개인적인 측면으로서 역사를 해석한다. 전통적 역사서술이 공적 영역에 초점을 두었다면 신역사주의는 그동안 보지 않았던 영역인 사적 영역에 주목한다.

 

7. 자기 입장 정하기

   역사가 사실보다 해석의 문제에 있고, 해석은 언제나 사회적 관습 안에서 행해진다고 할 때에 나의 이데올로기를 알고 인정하는 과정은 편향성을 알고 한계를 넘어가는 힘이 된다. 신역사주의의 역사서술에서의 또 다른 핵심은 여기에 있다. 역사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주관성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상대주의적 관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개인의 편향이 필연적으로 개입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자신의 심리적 이데올로기적 입장을 최대한 의식적으로 직시하는 힘이 된다.

 

8. 신역사주의의 핵심

1) 역사를 기술하는 것은 해석의 문제이지, 사실의 문제가 아니다

2) 역사는 선형적이지도 않고 진보적이지도 않다.

3) 권력은 다양한 담론들이 낳은 개념들의 교환 등을 통해 그 문화 안에서 순환한다.

4) 단일체로서의 시대정신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역사를 총체화하여 적절하게 설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5) 개인의 정체성은 역사적 사건, 텍스트, 문화적 가공물 등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낳은 문화에 의해 형성되는 동시에 그 문화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정상과 비정상, 제정신과 제정신 아님 등의 문화적 범주는 이런 것들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의 문제가 된다.

6) 모든 역사 분석에는 어쩔 수 없이 주관성이 개입된다.

 

9. 신역사주의와 문학

   신역사주의는 문학 텍스트를 가공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문학은 전통적인 역사관 속 시공간을 초월한 위치에서 바라보는 신비평의 방식을 거부한다. 문학 텍스트가 생산된 시공간 속에서 작동한 담론들의 상호작용과 사회적 의미들의 그물망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에게 알려 줄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한다. , 소설 속에서 그 시대의 시대담론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 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중세의 기사도 정신이 가지는 낭만적으로 그리는 모습은 전통적인 방식의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존재했던 사실들(집창촌과 성매매의 시작)을 통해서 성이 이분화 되는 시대적 모습을 발견한다면 신역사주의적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신역사주의의 관심은 시대의 그물망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작용하고 있는 지에 관심을 가지는 것에 있다.

 

10. 신역사주의와 문화비평

    신역사주의와 문화비평은 일련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이해방식이다. 역사와 문화를 일종의 종합경기장으로 이해한다. 우리는 오직 부분적이고 주관적으로 일부만 묘사할 수 있지만 그 묘사의 역동성들은 종합경기장(역사와 문학 텍스트) 안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개별적인 인간 정체성이 문화적 환경과의 대등한 교환관계 속에서 발달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천재에 대한 거부가 일어난다. 셋째는 학문간의 다중 연구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종합적인 이해를 추구하기 위해서 다양한 관점의 연계를 필요로 한다. 넷째는 푸코의 작업에 기반을 두는 것이다. 신역사주의는 푸코의 철학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았고, 문화비평 역시 그와 같은 관점에서 진행이 된다.

 

11. 문화비평

   전통적인 관점에서 문화는 일상의 삶이 아니었다. 오히려 일상을 초월하는 고매한 문화를 의미한다. 하지만 신역사주의적 문화비평에서는 고매한 문화로 한정되던 권력적 관행에서 벗어나 일상의 노동자 문화를 문화연구의 주제로 설정한다. 이 과정에서 고급문화저급문화를 구별하는 것 자체에서 이데올로기가 작동한다.

 

   문화란 특정한 생산물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고, 고정된 정의가 아닌 살아있는 경험이다. 하나의 문화란 저마다의 변화하고 발달하는 상호작용을 의미하며 개별 문화들의 집합체이다. 문화비평이 억압이 작동하는 양상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억압당하는 사람들을 무력한 피해자로만 간주하지 않는 다는 것은 주목해야하는 지점이다.

 

   따라서 문학 텍스트를 탄생시킨 문화와 문학 텍스트를 해석하는 문화 사이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문화비평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와 문학 테스트가 긴밀한 관계로 상호작용하고 있고, 그 사이의 복잡성을 포착하는 과정인 것이다. 문화비평에서 중요한 점은 시청자 또는 관객이 어떤 매체의 생산물을 특정 연예산업에서 의도한 대로 특정 관점에 따라 수용하지 않는 것에 있다. 예를 들어 BTS의 음악은 기존 K-POP음악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서사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1분 미리듣기로 그 음악의 구매여부가 달라짐에 따라서 음악의 서사구조(---)은 하나의 모습(---)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BTS의 음악은 서사구조를 살림으로써 히려 1분 문화에 대한 반기를 든 셈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의 인기 요인이 되었다. 특히 미국의 문화권에서부터 시작된 인기라는 점에서 기획사의 기획상품으로 음악이 만들어졌지만 전형적인 서사구조의 전복이자 소비자의 선택으로 인기가 형성된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