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르크스주의
1)기본 전제들
마크르스주의의 중요한 전제는 인간 문명과 문화 분석에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경제적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 경제적 현실은 물질적 환경이고, 역사적 상황을 뜻한다. 물질적인 조건에 따라 형성된 사회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정세를 뜻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경제적 현실이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계급적 차이를 낳기도 한다. 경제로 인해 상부구조는 사회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정세를 의미하게 된다. 경제적 거대 담론 안에서 하부구조는 상부구조를 이루는 기초가 된다. 이때에 상부구조가 하부구조를 이끄는 형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부구조는 계급화된 사회구조로써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사회, 경제적 계급들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오늘날에는 종교, 인종, 민족, 젠더들의 차이가 사회계급적인 차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브루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관계성에섯 프롤레타리아가 연대하여 언젠가 계급없는 사회를 만들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오늘날의 프롤레타리아는 과거와는 다른 계급적 위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로써 사회적 약자가 아닐 수도 있다. 오늘날의 계층차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게 되는 데, 비정규직 안의 프리랜서들이 존재함으로 강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크르스주의 안에서의 이데올로기나 거대담론의 중심 전제는 자본주의 사회가 잉여이익을 착취하는 구조라는 점에 있다.
2)오늘날의 사회구조
오늘날을 이루는 사회구조로써 다섯 가지 계층화를 제시하고 있다. 이 계층화는 최하층, 하류계층, 중산층, 상류계층, 귀족층으로 되어 있다.
최하층은 물질적으로 소유한 것이 거의 없는 상태, 앞 날의 희망을 찾기 어려운 노숙자와 같은 부류를 의미한다.
하류계층은 오늘날의 차상위계층을 의미하며 교육과 직업선택의 기회가 적지만 가계의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계층을 가리킨다. 이 계층의 사람들은 언젠가 최하위의 노숙자가 되지 않을 까 전전긍긍하는 빈민으로써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중산층은 안정된 재산층을 가진 계층이다. 괜찮은 집과 차가 있으며, 자녀의 대학등록금을 낼 만큼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상류계층은 사치품을 마련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계층을 의미한다. 이때의 사치품이란 두 채 이상의 고급 주택과 여러 대의 차를 의미한다.
귀족층은 거대 기업의 소유계층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돈에 관한 문제가 전혀 없는 갑부들이다.
3)좋은 이데올로기, 나쁜 이데올로기
이데올로기는 하나의 신념체계를 뜻한다. 오늘날에는 거대담론이라는 표현으로 대체되어 사용된다. ‘가난한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억압하는 것은 이데올로기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데올로기 안에는 사회적 조건들, 문화적 조건들이 함유될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강조되면 억압적인 형태를 띄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인성을 보고, 사람을 뽑아야 한다‘라는 말을 통해서 특정 계층을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를 살펴볼 수 있다. 하위계층의 사람들이 투쟁함으로써 살아남는 과정에서 투박함을 가지게 되는 것과 귀족 계층의 사람들이 가지는 여유에서 비롯된 좋은 인성을 가지게 된다는 자본주의 사회계층적 특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현상을 통해서 숨겨진 사회계층적 이데올로기를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에 있어서 중요시해야 할 점은 이데올로기가 너무 강조되어서 하나의 이념만을 옳다고 생각하는 자세를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이데올로기만 올다고 생각하는 자세 즉, 나의 이념만 옳다고 생각하는 자세는 폭력과 억압성을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세는 나쁜 이데올로기, 억압적 이데올로기로써 세상을 구성하는 물질, 역사적 조건들을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게 된다. 이 세상 속에서 이데올로기가 아닌 것은 존재하지 않으나 나의 이데올로기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데올로기도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보는 것이 중요한다.
4)과학이라는 이데올로기
마르크스주의 안에서 이데올로기가 아닌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 역시 이데올로기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우주, 과학도 이데올로기로 분류가 된다. 자연법칙은 우주란 빅뱅으로 확장된 것으로 인식된다. 즉, 우주의 시작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데올로기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과학도 이데올로기로써 인식될 수 있다.
하나의 이념 혹은 추상적 개념에 대한 이념적인 의식의 형태 또한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데올로기의 범주는 매우 넓으며 내가 믿고 있는 것 또한 이데올로기 범주 안에 속할 수가 있다. 내가 믿는 것이 추상적 개념이므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는 생각은 억압적 이데올로기와 마찬가지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
2. 이데올로기의 유형들
1)아메리칸 드림
아메리칸 드림 이데올로기는 ‘누구가 열심히 일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이는 경쟁주의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게 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개인은 자연의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경쟁 속에서 기본 단계로써 인식을 하게 된다. 사실 상 이러한 경쟁체계가 자리잡을 때까지 경제적 노예가 양상이 되고, 가난한 계층의 학대, 착취 구조가 형성이 되지만 ‘아메리칸 드림’으로 인해 정당화되는 것이다. 즉, 개인의 가난함을 열심히 일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여 구조적인 모순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만드는 맹점은 소수의 인물들의 이상을 제시함으로 다수의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소수의 이상을 따르게 한다. 따라서 중산층은 현실적으로 사회적 하위계층과 가까운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거나 인식하지 못한채 스스로를 부유층과 동일시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하위계층 역시 최하층에 가까운 계층적 모습을 인정하기 어렵기에 자신들을 중산층과 동일시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때의 동일시는 실제적인 계층상승이 아닌 심리적 동일시이다. 따라서 계급차별주의를 통한 정당화로 인해서 다수의 패배자가 발생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패배자라고 인식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2)애국심 이데올로기
애국심이라는 이데올로기에서 중요한 점은 가난한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나라의 가난한 사람으로 돌려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에 있다. 정작 이들의 싸움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두 나라의 부자계층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를 외면하거나 보지 못한다.
이러한 현상은 가난한 이들이 자신의 삶을 개선시키는 행위와 연대를 가로 막는다. 국가적 연대, 지구적인 연대를 막음으로써 하위계층은 그 계층 속에서 계속 억압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스포츠 스타를 통해서 한국인으로써의 긍지를 가지게 되는 것이 개인의 업적에 몰입함으로써 내가 가질 수 없는 삶의 자긍심을 스포츠 스타가 이룬 것으로 대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나는 삶을 통해서 대단한 성취를 이룰 수 없지만 스포츠 스타의 성취를 통해서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에 고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애국심 이데올로기가 작동될 때에 개인은 여전히 자신의 계층적 한계를 보지 못한다.
3)종교 이데올로기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보는 것은 그 대상을 하대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로 보는 것이 전부 나쁜 현상으로 간주되는 것은 아니다. 종교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충분히 이데올로기로 분류 된다.
하짐나 칼 마르크스는 종교가 현실의 문제를 실제로 해결해주지않지만 위로감을 준다라는 점에서 진통제와 같은 의미로써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즉, 가난한 이들이 종교를 통해서 현실을 외면하고 내세에 집중하는 현상을 종교라는 이데올로기가 부정적으로 작동한 것으로 본 것이다. 가난한 계층이 현실의 문제해결을 차단하고, 신을 찾음으로써 현실에 안주한다는 점에서 부정적 이데올로기가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
4)개인이라는 이데올로기
개인이라는 이데올로기에서는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으로써 개인을 바라본다. 이때에 천부적 인권이라는 점에서는 긍정적 이데올로기가 작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악행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는 부정적 이데올로기가 작동한 것으로 보기에 이데올로기의 양면성을 살펴볼 수 있다.
5)소비지상주의 이데올로기
경쟁이라는 사다리에 떨어진 개인들이 소비로 보상 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에 인간은 소비 가치로써 존엄성을 발휘한다. 이때 주입된 이데올로기는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소비로만 존재하는 개인의 가치와 행복이라는 점이다. 소비 가치 외에 존엄성을 나타낼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내면을 이데올로기적 관점으로 보자면 상류층에 대한 환상을 안고 있는 개인이 소비로써 표출된 것을 의미한다. 이때에는 모두가 상류층이 될 수 없기에 상류층과 같은 소비를 함으로써 대리만족을 한다는 것이다.
상품의 생산자는 상품으로부터 소외된다. 이때의 소외는 사용가치보다는 교환가치의 극대화를 통해서 노동자들의 눈을 가린다. 즉, 시장경쟁체계에서 사회가 돌아가려면 소비지상주의에 의지할 수 밖에 없기에 노동자들의 눈을 가려 상품화하고, 과시적 소비를 부추겨서 소비를 부추기는 것이다. 이때에 노동자는 세계 속에서 관계하기 위해서 소비를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라깡의 관점에서는 모든 주체가 타인의 인정을 통해서 자기 존재감을 인정하게 되기에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과 불안이 소비를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6)제국주의 이데올로기
특정 국가의 인종과 사회가 자본을 독점하는 것 또한 제국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작동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과거에는 제국이라는 개념으로 특정 국가의 인종과 사회에 자본이 묶인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자본의 매트릭스가 네트워크 형식으로 자본을 소유하게 한다. 특정 국가의 인종과 사회에 매여있지 않은 형태를 취하게 된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 억압자오 억압받는 자의 구분은 어렵다. 약자에 대한 차별로 분노와 경멸을 표출하는 문화를 낳기도 한다.
2.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스 주의
정신분석학은 가족 안에서 형성된 개인의 정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마르크스주의는 개인과 집단의 심리적 경험과 행동을 이데올로기적 관점으로 초점을 맞춘다. 이때에 이 두 관점을 독자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상호보완적인 형태를 취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신분석학이 보지 못했던 부분을 마르크스주의가 볼 수 있는 것이다.
3. 마르크스주의와 문학
마르크스적 관점에서 문학이 가지는 의미는 사회, 경제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데에 있다. 문학작품은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기에 마르크스적 관점으로 문학을 보는 것은 세계를 보는 눈을 얻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비판을 대면할 수 있는 사람은 적기에 문학작품을 통해서 이데올로기적 해석을 함으로써 비판을 간접적으로 마주 할 수 있게 함이 가능해진다. 즉, 허구세계를 통해서 현실세계의 문제를 마주하게 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수월하게 문제를 받아들이는 것과 비판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둘다 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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